Seeing is Believing?
미디어를 공부할 때 가장 자주 들었던 문장 가운데 하나는 ‘Seeing is Believing.’였습니다.
보는 것이 곧 믿는 것. 사진과 영상은 현실을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매체였고, 우리는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카메라의 앵글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있는 그대로의 세상이 아닌 관점과 의도가 담긴 연출 또한 시작된다는 사실도 함께 배웠습니다.
공간 컴퓨팅을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오래전 강의실에서 들었던 한 문장이었습니다.
AI가 보여주는 세상을 우리는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그 질문을 안고 서울 합정에 위치한 우무지에서 열린 북콘서트를 찾았습니다.
지금 다시 꺼낸 화두, 공간 컴퓨팅
북콘서트에서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왜 지금 공간 컴퓨팅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나요?
전진수 대표는 ‘왜 지금인가’에 대해 잠시 생각한 뒤 네 가지 키워드를 꺼냈습니다.
“빅테크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AI는 기술의 진입장벽을 크게 낮췄으며, 사용성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비즈니스가 실제 수익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어요.” 전진수 대표는 지금을 “기술이 시장으로 넘어가는 시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상 깊었던 건 기술보다 타이밍을 설명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기술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시장은 이제야 준비되기 시작했다는 것. ‘왜 지금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결국 새로운 기술이 등장해서가 아니라, 오래 준비된 기술이 비로소 현실과 만나는 시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기술은 오래전부터 존재했지만, 시장은 이제야 준비되기 시작했습니다.— VAAX 정리
책 전체의 흐름으로 다시 읽히는 답변
북콘서트에서 들은 답변은 짧았습니다. 하지만 인터뷰를 마치고 책을 다시 펼쳐보니, 몇 분 안 되는 답변 속에 책 전체의 흐름이 압축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빅테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3부 「화면 밖으로 나온 빅테크 기업」과 「누가 당신에게 최후의 글래스를 씌울 것인가」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공간 컴퓨팅 경쟁이 더 이상 기술기업만의 경쟁이 아니라 애플, 메타, 구글과 같은 글로벌 빅테크의 전략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흐름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AI가 기술의 진입장벽을 낮췄다’는 설명은 2부 「눈을 뜬 인공지능」으로 이어집니다. 공간을 이해하는 AI가 왜 지금에서야 현실적인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었는지, 기술적 배경을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는 장입니다.
마지막으로 ‘사용성이 해결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마우스와 터치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들」과 연결됩니다.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안착하는 데 중요한 것은 단순히 뛰어난 성능이 아니라,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험이라는 점을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설명합니다.
한계는 기회의 지도
첫 번째 질문이 ‘왜 지금 공간 컴퓨팅인가’였다면, 두 번째 질문은 자연스럽게 시장으로 향했습니다. 책을 읽고 인터뷰를 준비하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것은 기술 자체보다 시장이었습니다.
공간 컴퓨팅은 분명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합니다. 기술의 완성도 때문인지, 사용자 경험의 문제인지, 혹은 기업들이 아직 투자 시점을 판단하지 못하는 단계인 것인지. 기술의 발전 속도와 시장의 체감 사이에는 여전히 간극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간극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묻고 싶었습니다. 최형욱 대표는 먼저 질문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짚었습니다. “누구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야기일까요?”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새로운 사업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시선이라고 설명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습니다.
“지금도 한계는 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도 있고, 시장적인 부분도 있고, 여러 이슈들도 존재합니다.” 다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AI의 발전으로 기술을 도입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난이도는 크게 낮아졌고, 성능은 오히려 비약적으로 향상됐습니다.
기술과 비즈니스에서는 문제와 한계가 단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걸 해결하면 결국 비즈니스 기회가 되는 거잖아요.— 최형욱 대표
해결해야 할 문제가 분명하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시장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결국 누군가에게는 한계로 보이는 지점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선명한 기회의 출발점이 됩니다.
한계는 기회의 지도였습니다.
설익은 경험은 시장을 다치게 한다
공간 컴퓨팅이 시장에 안착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자, 두 대표는 기술보다 먼저 사용자 경험을 이야기했습니다. 좋은 기술이 곧 좋은 경험이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최형욱 대표는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자리 잡는 과정을 이야기했습니다. 기술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장에 먼저 등장하면, 사람들은 가능성보다 불편함을 먼저 기억하게 됩니다.
전진수 대표 역시 같은 맥락에서 오큘러스의 사례를 이야기했습니다. 국내 첫 정식 출시를 직접 이끌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당시 시장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던 이유를 단순히 기술의 한계로 보지 않았습니다.
설익은 경험은 안 쓴 것보다 더 나쁜 기억을 남깁니다.— 전진수 대표
짧은 문장이었지만, 메타버스 열풍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은 존재했지만 사람들이 기억한 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불편함이었습니다.
결국 시장은 기술보다 경험을 먼저 평가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기술일수록 더 중요한 것은 성능이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느냐는 점이었습니다. 기술이 앞서가는 것과 시장이 준비되는 것은 다른 문제였습니다.
사용자 경험과 공간을 이해하는 AI
이 부분은 책 2부 「마우스와 터치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들」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책에서도 반복해서 강조하는 점은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등장할 때마다 시장을 바꾼 것은 기술 자체보다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었다는 점입니다.
결국 공간 컴퓨팅 역시 더 뛰어난 기술이 아니라, 사람들이 기술을 의식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러운 경험을 제공할 때 비로소 일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술이 일상으로 확장되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조건은 AI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공간을 이해하는 데에는 단순히 보는 능력이 아니라, 그 의미를 해석하는 지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AI가 본격적으로 활용되면서 중요한 것은 더 잘 보여주는 기술이 아니라, 공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는 기술이 되었습니다.
티핑포인트는 혼자 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공간 컴퓨팅이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이번에는 시장의 전환점에 대해 물었습니다. 기술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갖춰져야 하나의 기술이 산업 전체를 움직이는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최형욱 대표는 잠시 웃으며 답했습니다. “말씀하신 모든 게 필요하고요.” 그리고 이어진 한마디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하늘이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농담처럼 들렸지만, 이어진 설명은 매우 현실적이었습니다. AI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도 어느 한 기업의 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OpenAI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AI를 뒷받침하는 컴퓨팅 성능이 함께 발전했고, 방대한 데이터가 축적됐으며, 이를 실제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는 환경까지 동시에 성숙했습니다.
하나의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순간은 단 하나의 혁신으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공간 컴퓨팅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AI, 디바이스, 사용자 경험, 그리고 시장까지 각각 따로 보면 아직 부족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끌어올리기 시작하는 순간 변화의 속도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빨라집니다.
사이즈가 아니라 임팩트
초안에서 강하게 남아 있던 메시지 중 하나는 시장을 바라보는 기준이었습니다. 스타트업과 신사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시장 사이즈를 먼저 계산하는 태도가 아니라, 이 문제가 해결됐을 때 누구에게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묻는 태도였습니다.
최형욱 대표의 관점은 명확했습니다. “이 문제를 풀었을 때 누구에게 어떤 베네핏이 돌아가느냐. 임팩트가 있으면 스케일은 따라옵니다.”
전진수 대표는 빠르게 변하는 시기일수록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남들이 한다는 이유만으로 따라가면,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누군가 이미 치고 나가버립니다.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발 떨어져 냉정하게 바라보는 태도, 그것이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감각입니다.
혼란 속에 문제가 있고, 문제 속에 기회가 있고, 기회 속에 사업이 있고, 사업 속에 성장이 있습니다.— 인터뷰 메시지